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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정부, 초과세수 취해 증세 ‘골든타임’ 놓치나
2019-03-09 00:00
작성자 : 구재이
조회 :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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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정부, 초과세수 취해 증세 ‘골든타임’ 놓치나

주영재 기자
 

별 성과 없이 끝난 재정개혁특위

출범시기 늦어 추진동력 잃고 문재인 정부의 개혁의지 부족 지적도



“(재정개혁특별)위원회 활동에 혹독한 평가를 내려야 재차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참여자로서 기꺼이 비판을 감수한다.”

지난 2월 26일 보고서를 발표하고 활동을 마무리한 재정개혁특위의 한 위원은 <주간경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커다란 제도개혁의 시기를 놓쳤다”고 총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분배와 성장이 선순환하는 ‘포용적 재정정책’을 내걸고 조세와 재정을 포괄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기구를 지난해 4월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했다. 재정분야의 개혁과제를 발굴하고 국민과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개혁방안을 마련하는 자문기구인 재정개혁특위이다. 정부는 재정개혁특위에서 전문가와 국민 목소리를 수렴해 100년이 갈 조세개혁의 뼈대를 세우겠다고 했다. 그러나 10개월 만에 사실상 큰 성과 없이 끝났다는 평가다.

특위 위원들은 성과가 미진했던 원인을 몇 가지로 보고 있다. 우선 재정개혁특위의 출범 자체가 늦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따르면 재정개혁특위는 2017년 출범했어야 했지만 지난해 4월에야 설치됐다. 지지도가 높은 집권 초기에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했어야 했는데 시기를 놓친 것이다. 정부가 얘기와 달리 재정개혁의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월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소득분배 관련 긴급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월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소득분배 관련 긴급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방패막이 된 재정개혁특위
재정개혁특위의 조세소위원회에서 활동한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정부는 소극적 행태를 반복했고, 정부의 ‘핵심’은 종부세 외에는 긴급하게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근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보편적 증세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민해보지 않았다”고 밝힌 대목과 일치한다.

재정개혁특위가 제시한 권고안을 정부가 수용하지 않으면서 특위가 동력을 잃은 측면도 있다. 재정개혁특위는 지난해 7월 종부세의 과세표준을 정할 때 주택의 공시가격에 곱하는 비율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80%에서 매년 5%포인트씩 올리도록 권고했다.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금액도 연간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낮추도록 했다. 정부는 종부세와 동시 인상이 어렵다며 금융소득 과세 확대에 제동을 걸었다.

특위의 예산소위원회 위원인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권고안 발표 하루 만에 김동연 전 장관이 이를 거부한 일이 전환점이었다고 본다”며 “우리가 합의를 해서 내놔도 정부가 거부하면 끝이라는 걸 알면서 특위가 힘을 잃었고 위원들의 의지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일부 위원들은 위원회를 해체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조세정책 수립 권한을 놓치고 싶지 않으면서도 비난은 피하고 싶어한 정부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논의과정이 비공개로 일관된 것도 문제다. 그간 전체회의 4건을 포함해 50여차례의 크고 작은 회의를 개최하면서 조세·재정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이 논의했던 내용은 대부분 공개되지 않았다. 대통령 직속이라는 구조가 ‘독’이 됐다. 특위의 논의 결과가 정부 입장으로 받아들여지는 걸 우려해 위원들의 논의를 비공개했다.

조세소위원회 위원인 구재이 세무법인 굿택스 대표세무사는 “대통령이 공론화 기구로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했다”며 “조세개혁은 정치적 부담이 있어서 누구도 쉽게 손대지 못하지만 그만큼 성과를 내면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데 근시안적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지금으로선 재정개혁 분야에서 문재인 정부는 별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라며 “안타까움을 넘어 강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세입추계를 잘못해 과도한 초과세수가 발생한 것도 증세 논의를 어렵게 만들었다. 지난해 정부 예상보다 더 걷힌 세금은 역대 최대인 25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조영철 교수는 “초과세수가 국내총생산의 1.4%에 달하면서 증세를 논의하기가 정치적으로 굉장히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초과세수가 큰 것으로 나오자 곧장 보수 경제학자와 언론을 중심으로 감세 주장이 나왔다.

지난해 7월 3일 서울 수송동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에서 강병구 위원장(왼쪽)이 부동산 보유세 개편 권고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지난해 7월 3일 서울 수송동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에서 강병구 위원장(왼쪽)이 부동산 보유세 개편 권고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기재부 세수추계 실패, 증세 논의 막아



조 교수는 법인세의 경우 전년도 법인소득을 기준으로 매기는데 기재부가 반도체 호황에 따른 법인세 증가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미 2017년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상황이다. 조 교수는 사회복지 예산을 한 번 늘리면 비가역적이라고 생각하는 기재부 재정 보수주의자들이 복지예산을 늘리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세수를 적게 잡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도 “과도하게 세수추계를 잘못해 재정이 결과적으로 확장적이지 못하고 흑자에 가깝게 됐다”며 “경기가 안 좋은데 국가재정을 보수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지적했다. 주 교수는 “세수추계를 정확히 해 국가재정을 효과적으로 쓰도록 계획을 짜는 것이 기재부의 역할인데 2년 연속으로 세수 추정을 과도하게 잘못해 돈 쓸 곳에 쓰지 못한 결과를 낳은 것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4분기 소득분배는 역대 최악으로 조사됐다. 노인 빈곤문제가 급속히 진행된 것이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소득 감소로 반영됐다. 기초연금을 대폭 올리는 등 공적 이전 확충을 통해 선별적으로 복지를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재정적자를 2~3년은 과감하게 감수해야 할 정도로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저출산 고령화로 장기 재정 여력이 여의치 않다는 점에서 증세도 불가피하다. 증세는 일차적으로 자산이나 불로소득에 가까운 이자배당, 주식양도차익과 상속과 증여를 통한 부의 증식에 과세를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구재이 세무사는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재분배의 취지에 부합하는 세제는 거의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보수정부인 박근혜 정부도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을 연간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낮췄는데 문재인 정부가 자산과세를 강화하겠다하면서도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을 낮추지 못하겠다는 건 개혁의지가 없는 것으로밖엔 해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인빈곤 해결과 사회안전망 구축 등 사회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중간계층까지도 소득공제를 줄이는 등 증세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특위가 ‘깜깜이’로 진행되는 등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우철 교수는 2021년에는 세수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면서 증세 논의가 중요한 의제로 다시 부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 교수는 “선거 전에는 적극적으로 증세를 하겠다고 해놓고는 선거 후엔 다음 정부로 넘기는 식의 정치적 행태는 반복되선 안 된다”며 “증세 논의가 다시 이뤄진다면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 각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해 정치적 부담도 줄이고 대표성도 띠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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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economy/economy-general/article/20190309134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