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의 모습. 노르웨이는 2001년부터 온라인에서 자신은 물론 타인의 소득과 과세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스웨덴과 핀란드도 납세의 의무와 관련한 소득과 과세자료는 공적인 정보로 간주하고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공개한다. Unsplash
“우리가 기업들의 세부담 수준을 명확히 알기 위해 법인세 납부 1~50위 기업의 과세정보를 달라고 요청해도 국세청은 기업을 특정할 수 있는 개별과세정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자료 제공을 거부하고 있다.”(문은희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
국세청이 과세정보 제공에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국세청은 개별과세정보에 해당할 경우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 있는데 개별과세정보에 해당하는지, 자료 제출 의무가 있는 일반적인 통계자료에 해당하는지 해석하는 권한이 국세청에 있다. 문은희 조사관은 “핵심 과세정보의 경우 개별과세정보라며 대부분 거부하는데 그 해석 기준을 법규에 명확히 규정하고, 일반에 공개하지는 않아도 적어도 국회에서 국정감사나 국정조사를 위해 필요하다고 요구하면 개별과세정보라도 제출하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삼성전자처럼 아웃라이어가 있을 경우 속성 일부만 공개돼도 다른 자료와 결합해 식별 가능하다”며 “법인 정보는 식별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한 채 제공하기가 아직 기술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한국은행·국회도 자료받기 쉽지 않아
과세정보는 국가 조세행정의 공정성을 평가할 수 있는 기초자료다. 조세정책을 수립하고 그 효과를 분석하는 데도 유용하다. 과세정보 제공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국회와 공공기관, 학계에서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국세청의 정보 공개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재정개혁특위 위원장을 지낸 강병구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다른 조세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의 과세정보 공개는 상대적으로 상당히 미흡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6월 국세청 산하에 국세통계센터가 출범했지만 아직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크지 않다.
총 18종의 국가승인통계를 작성·발표하는 한국은행도 국세청 자료를 받기가 쉽지 않다. 한국은행은 산업연관표의 정확도를 높이고 자료수집 기간을 줄이기 위해 2007년 11월 부가가치세액 신고자료를 국세청에 요청했지만 자료를 받지 못했다. 당시 국민소득통계의 산업별 부가가치율을 추정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산업별 생산수율 자료도 요청했지만 제공받지 못했다. 두 자료는 지금도 얻지 못한 상황이다. 국세청 자료를 제공받지 못할 경우 표본조사를 수행해야 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
일례로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기업의 전체적인 경영활동을 보여주는 ‘기업경영분석’ 통계를 작성하는데 과거 표본조사를 하다 국세청의 법인기업 재무제표를 받으면서 조사인력을 50명에서 10명으로, 비용은 8분의 1로 줄일 수 있었다. 이상호 한국은행 통계기획팀장은 “국세기본법에서 통계청은 예외조항으로 과세정보를 국세청에서 받을 수 있게끔 열려 있는데 한국은행은 아예 배제되어 있다”며 “감사원 지적 이후 2011년부터 기업경영 분석을 위한 자료를 받고 있지만 실무진의 협조체계라 과세자료를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얻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한국은행도 국가통계 작성을 목적으로 할 경우 국세청에 과세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 국세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비슷한 취지로 통계법과 한국은행법 개정안도 올라 있지만 국회의 대치상태가 길어지면서 다음달 열릴 정기국회에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국세청의 경우 이 같은 국세기본법 개정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납세자 개인정보와 비밀유지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중대한 공익 목적이 있는 예외적 경우에만 제공할 수 있다”며 “한국은행이라는 특정 기관만을 위해서 예외 사유를 추가하는 것은 법체계상은 물론 다른 기관과의 형평성에 비춰볼 때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민간·학계에서는 연구 목적의 과세자료 제공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정개혁특위에서 활동했던 구재이 세무사(납세자권리연구소장)는 “통계청이 생산한 자료는 표본조사가 많은 반면 국세청 자료는 실증자료라는 점에서 조세정책과 복지정책의 수립과 효과 검증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개인정보보호가 우려된다면 비식별 조치를 한 후 샘플링해 제공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소득분위도 10분위에서 100~1000분위로 세분화할 필요도 있다. 강병구 교수는 “최근 유승희 의원이 우리나라 불로소득의 규모가 130조원이 넘는다는 내용을 발표했는데 그런 막대한 불로소득이 어떤 소득계층에 귀속되는지를 알려면 10분위 자료보다는 예컨대 상위 1% 또는 상위 0.1%까지 세분화된 소득계층별 조세정보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북유럽 복지국가 비결은 과세정보 공개”
유럽의 경우, 표본 가구의 소득·재산 정보와 납부세액, 복지급여 등의 내역 등이 연계된 ‘조세-급여 모델’을 구축해 정부가 복지·세금제도 등을 변경할 때의 변화를 불과 몇 분 만에 예측할 수 있다. 강병구 교수는 “양극화나 분배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합리적 공정과세의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면 일단 과세가 소득계층별로 어떻게 분포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종성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교수(한국불평등연구랩 소장)는 복지국가를 지향하려면 소득·과세정보 공개를 과감히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종성 교수는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에서는 다른 사람이 얼마를 벌고, 그 중 얼마를 세금으로 내는지 알 수 있어 과세의 공평성에 대한 믿음이 크다”며 “국민 세금부담이 국민총소득의 50%에 가까운데도 별 불평 없이 세금을 내는 것은 이런 신뢰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세정보를 공개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핀란드는 세무서에 방문해야 하고, 스웨덴의 경우 전화로 확인할 수 있다. 노르웨이는 2001년부터 아예 인터넷에서 공개적으로 과세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과세정보를 공개하면 탈세와 임금격차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의 소득을 쉽게 조회할 수 있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하기가 수월하다. 특히 스웨덴에서는 이 정책이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소득정보를 공개하면 부유층의 돈을 탐내는 범죄자들이 악용할 수 있다. 저소득 가정의 아이들이 놀림과 괴롭힘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노르웨이 정부는 이런 우려에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누가 자신의 과세정보를 들여다 봤는지도 알 수 있게 한 것이다.
유 교수는 “북유럽처럼 개인 단위의 정보를 모두 공개하는 게 제일 좋지만 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김영란법’ 대상자에 대해서는 소득과 세금정보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국세청은 “데이터센터 형태로 보안시설을 거쳐 과세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을 강구하고 있다”며 “예산을 확보해 내년부터 시스템을 구축하고 학계 등 연구수요가 많은 곳을 대상으로 자료 제공을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